“우리가 무슨 죄가 있어. 내가 잠자다 보니까 핸드폰으로 이쪽 사진을 계속 찍더라고. 이게 무슨 짓이야. 근무 중에 우리 사진 찍고. 내가 사진 다 확인할거야. 기념으로 찍었다는 게 말이 돼?”
지난 4일 새벽 세월호 참사 유족들과 국민대책회의 관계자들이 부스스 일어났다. 핸드폰 불빛이 하나 둘 켜지고 시간을 확인한다. 3시 40분 쯤 됐다. 전날 사정없이 내리친 비바람에 이리저리 자리를 옮겨보다 결국 농성장 가운데로 모여 잠을 청했던 유족들 얼굴엔 피곤함이 가득하다. 사태를 파악하자 일부는 경찰에 따지러 갔고, 일부는 일어나 앉은 자세 그대로 “하~” 하고 한숨을 쉬었다.
사진 찍은 경찰은 유족 항의에 ‘개인적으로 찍은 사진’이라며 핸드폰을 돌려달라고 했다. 이 사태를 보니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단다. 김씨는 “분명히 나에게 기념 촬영한다고 했잖아!”라며 화냈다. 결국 경찰 책임자까지 나서 잘못을 인정하고 유족과 국민대책회의 측이 경찰의 ‘불법 채증’인 만큼, 다음 날 직접 사진을 확인하고 핸드폰을 돌려주는 것으로 사태가 일단락됐다. 같은 시각, 참사 희생자 단원고 권순범 군의 어머니 최지영 씨는 잠을 자지 않고 “내 아들 살려내라”며 청운파출소 문 앞에서 10미터 가량 떨어진 길바닥에 주저앉아 울고 있었다.
염불보다 잿밥
세월호 특별법 제정에 대한 박근혜 대통령의 답변을 기다리며, 유족과 직접 만나 대화하자며 청와대 노숙농성을 한 지 4일로 14일째였다. 참사 희생자 단원고 박성호 군의 어머니 정혜숙 씨는 4일 새벽 사태를 조용히 지켜봤다. 정혜숙 씨는 ‘이 경찰, 이 정부가 자식 잃은 부모에게 이렇게까지 하는 구나!’라는 마음이 들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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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단원고 박성호 군의 어머니 정혜숙 씨와 유족들은 지난 2일 광화문 광장에서 청와대행 삼보일배에 나섰다. |
새정치민주연합 김현 의원실은 경찰청 자료를 바탕으로 4월 16일부터 5월 21일까지 안산 단원고와 합동분향소에 모두 801명(누적인원)의 정보 경찰이 투입됐다고 폭로한 바 있다. 단원서와 경기경찰청에다 경찰청 소속 정보 경찰까지 투입됐다. 진도인원까지 합하면 정보 경찰만 모두 1700여명으로 추정됐다.
“처음부터 경찰 사찰이 극심했어요. 안산분향소 올라왔을 때 그랬고, 진도 내려가는 차 안에서 사찰하던 경찰이 유족에게 걸리기도 했죠. 4월 16일 참사 나고 20일에 우리가 청와대 간다고 진도 다리 행진한 날도 경찰 사찰이 문제였죠. 경찰은 학부모들이 회의를 거쳐 자체 결정했는데, 이를 왜 보고하지 않았냐고 식으로 뒤를 캤죠. 그게 걸렸어요. 대통령과 국무총리가 와도 아무것도 안 하니까 방법이 없어 청와대로 가야한다고 학부모 회의에서 결정했지만, 실제 우리를 분개하고 만들고 화가 나서 행동에 옮기게 한 것은 그 놈의 사찰이었어요”
140일이 넘도록 자식 잃고 온 몸으로 진상규명·책임자 처벌에 나선 부모의 노숙농성을 ‘기념’ 촬영 했다는 경찰 모습은 세월호 참사 이후, 변하지 않은 소위 공권력의 행태를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경찰은 밤마다 행인으로부터 유족을 보호한다며 차벽을 설치한다. 하지만 새벽 5시경이면 유족에게 매연을 날리며 차벽을 치운다. 누가 시간이 모든 것을 해결해 준다고 했는가. 농성장에선 쌩하니 달리는 자동차 소리가 들리지 않으면 이젠 잠을 자기 어렵다는 우스갯소리가 자연스러울 만큼 시간이 흘렀지만, 유족이 요구하는 특별법과 관련해선 해결된 것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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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간장이 녹는다
단원고 희생자 어머니들은 청와대 농성장에서 노란 리본을 만들기 위해 틈틈이 둘러 앉아 바느질한다. 가을비가 두 차례 내린 이후 싸늘해진 날씨가 야속하다. 하지만 아직 한낮 기온이 30도 안팎까지 오르는 늦더위가 이어진다. 없던 병도 생겼다
“다 들 몸이 약한 부분부터 병이 와. 전에는 병원에 가도 신장이 어쩐다니, 혈압이 높다는 얘길 들어본 적이 없어요. 하지만 참사 나고 5일 뒤에 혈압이 230/160mmHg로 너무 높게 나왔어요. 갑상선 호르몬이 높아지고, 임파선 기능이 안 좋다고 하고, 담석도 있다고 하고, 자궁에도 작은 혹들이 많다고 하고. 콩팥이 쪼그라들었다고 하더군요. 어디 한 곳만 아프겠어요? 총체적으로 오겠지. 나는 살아도 산 게 아니라고 생각했죠. 수액을 맞느라 주사 바늘을 몸에 꽂으면 꽂는 느낌, 찔리는 느낌이 없어요. 애간장이 녹는다는 말이 맞는 것 같아. 의사들은 ‘단기적으로 건강이 나빠질 수 없다’고 하죠. 지금은 병원 안 가요. 손볼 때가 아니니까. 병원에서는 ‘신장도 이대로 놔두면 투석해야 합니다’, ‘자궁 혹도 계속 놔두면 치료해야 합니다’라고 해요”
정씨에게 4명의 자녀가 있다. “최고의 의무이자, 최고의 산물이고, 최고의 보배”였다. 셋째인 성호 군은 참사가 일어난 지 8일 만인 4월 23일 가족의 품에 돌아왔다. 온 가족이 안산 천주교 선부동성가정본당 신자였고 성호 군은 복사로 활동하면서 사제를 꿈꾸던 예비신학생이었다. 초등학교 저학년 때는 두 달 가량 방과 후 병원을 오가며 다리를 다쳐 입원한 친구를 돌보기도 했다고 한다. 정씨는 “이기적인 사람은 자연스럽게 배척할 줄 알고, 약자는 자연스럽게 보듬을 줄 아는” 성호 군이 참 대견했단다.
“성호는 나에게 기쁨을 많이 주고 고마운 아들이었죠. 순하고 착하고 집중력이 좋았어요. 정서적으로 굉장히 안정됐고, 가족을 배려했지. 우리 부부는 성호에게 큰 소리를 쳐 본 적이 없어요. ‘자기주장이 강한 사회에서 성호가 어떻게 살아갈까’하고 내가 오히려 성호를 걱정했지. 나는 아이들이 물질적 충족이 아니라 정신적 충족이 풍부한 삶을 살길 바랐어요. 아이들이 자신만을 위해 살지 않고 세상과 남을 위해 살길 바랐어요. 그렇게 가르쳤고 기도했죠. 그래서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위한 일이 잘 됐으면 좋겠어요. 우리 아이의 목숨 값이 그런 거였으면 좋겠어. 성호가 저 위에서 엄마를 보고 있을 텐데, ‘엄마는 말과 행실이 다른 사람이야, 이중인격자야’ 하면 안 되잖아요”
정씨에겐 요즘 작은 고민이 있다. 머릿속이 성호로 가득 차 있어 남은 아이들과 전화 통화를 하다가 자꾸만 이름을 성호라고 잘못 부른다면서, 아이들이 상처받을 것 같다고 염려했다. 유가족들은 대부분 남은 자녀를 어떻게 돌볼지에 대한 걱정을 앞세운다. 정혜숙 씨는 대학교 3학년 큰 딸, 대학교 1학년 둘째 , 중학교 2학년 막내를 떠올렸다. 큰 딸은 엄마와 함께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과 책임자처벌 활동에 나섰고, 둘째는 공부하며 막내를 돌보고 있다.
“큰 아이는 엄마가 쓰러질까봐 엄마를 쫓아 나오다가, 아픈 엄마 아빠들이 너무 많이 있다는 것을 보게 된 거지. 엄마 아빠들 일을 대신 해주다가 지금은 자기 일이 돼 버렸어요. 세월호 참사 기록단 일과 4.16TV 일을 해요. 둘째는 내가 ‘제발 둘 중 하나는 학교에 다녀달라’고 애걸복걸해서 학교에 다녀. 4월 16일 참사 터지고 학교에 가지 못해 중간고사도 보지 못했다가, 기말고사 볼 때쯤 학교에 갔어요.”
그러면서 정씨는 대한민국 정부가 “아이들은 물에 빠트려 죽여 놓고 부모는 서서히 목 졸라 죽이고 있다”고 말했다. 2011년 춘천 산사태 참사로 아이를 잃은 정경원 씨가 3일 저녁 청와대 농성장에서 강연을 하자 세월호 참사로 아이를 잃은 한 아버지는 “가면 갈수록 자식이 보고 싶어 미치겠어요”라고 토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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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가위 보름달 대신
청와대 농성장은 아침 7시부터 분주하다. 바쁘게 출근하는 사람들 사이로 근처 청운중, 경복고 등 학생들이 교복을 입고 농성장을 지난다. 참사 희생자 단원고 김다영 양의 어머니가 그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이곳 학생들 하복이 단원고 학생들 하복과 모양이 비슷하다”고 혼잣말을 한다. 유족들은 간단히 아침식사를 하고 주민센터 화장실이나 인근 시민사회단체 사무실에서 씻고 와 하루를 시작한다.
오전 9시쯤부터 농성장은 수많은 사람들이 방문과 손길로 다져진다. 산타 할아버지의 선물주머니 같은 두 개의 빨간 망태기에 빨랫감이 차면, 근처 교회에서 빨아온다. 지나던 시민이 떡과 과일을 가져오고, 언론에 알려지길 거부한 인근 커피가게에선 매일 시원한 커피를 종류별로 배달한다.
어떤 이들이 방문하면 쓴 소리가 나오기도 한다. 정혜숙 씨는 지난 8월 26일 새정치민주연합 박영선 국민공감혁신위원장 등 원내대표단과 의원 등 일부가 5일째 노숙농성 중인 가족들을 찾아 사죄하자, “제대로 못한다면 법을 바꿔서라도 국회의원들을 배고프게 만들어야 한다”며 강하게 말했다.
“그때 더 심하게 말하려고 했는데... 너무 우스워요. 우리가 국회에서 단식, 노숙하는데 새정치는 얼굴 보이고 우리 편인 냥 한 다음 아무것도 안 했잖아요. 그게 너무 놀라웠어요. 세월호 참사가 발생했을 때 이미 놀라웠긴 했지만... 참사가 났는데 모두 쥐 죽은 듯 조용하고 침묵하는 거예요. 언론에선 오보만 내고. 왜 이런 참사가 났고, 누구 책임이고, 빨리 구조·수사해야 한다고 자기들이 나서야 하는데 말이에요. 저는 그때 ‘이건 야당이 아니다, 여당 끄나풀이다’라고 생각했죠. 국회에서 당시 박영선 의원과 김한길, 안철수 두 대표가 왔죠. 우리가 ‘아무 것도 안 하는 당신들이 무슨 야당이냐!’고 했더니 바로 그날 시위를 하고, ‘그거 가지고 되겠냐. 우린 단식하고 있는데!’ 했더니 단식장에 앉기 시작했죠. 한 없이 갑갑했어요. 박영선 의원이 원내대표 되고 여자라서 공감대가 만들어지나 했는데, 여자도 여자 나름이더군요. 뒤통수 두 번 맞은 거지”
야당을 강하게 질타하는 정씨에게 여당은 어땠냐고 묻자 “새누리당은 나타나질 않았다”고 말했다. 정씨는 중요한 일이 있을 때마다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 이완구 원내대표 등 몇몇 의원에게 호소 글을 담아 문자를 보낸 적이 있다. 야당 의원 한 두 명에게서만 ‘최선을 다하겠다, 죄송하다, 노력하겠다’는 답문이 올 뿐, 여당 의원에게선 ‘절대’ 안 온단다. 정씨는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위한 싸움이 ‘장기전’이 되지 않길 바랄 뿐이다.
“청와대와 정치권이 하는 짓을 보면 장기전으로 갈 것 같기도 해요. 세월호 참사 100일이 지나고 아무 것도 해결된 게 없고 아무 것도 한 게 없는데, 다 해줬다는 식으로 말하는 사람들이 문제잖아요. 국민 대다수가 특별법은 제정돼야 한다고 하는데, 청와대와 정치권이 횡포를 부리는 거잖아요. 아직 팽목에서 돌아오지 못하는 10명의 실종자들이 이런 정부를 믿을 수 없어 돌아오지 못하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어요”
‘애들 같아서 노란색은 좋아하지 않았는데, 이젠 노란색만 보면 환장한다'는 유족들이 추석 연휴 기간에도 국회·광화문·청운동주민센터 농성장을 지키고 있다. 이곳에는 한가위 보름달 대신 ‘자식을 잃은 비탄과 진상규명’을 마음에 채우고 있는 부모가 있다. 세월호 참사 148일, 국회 본청 앞 농성 61일, 광화문 광장 농성 59일, 청와대 앞 농성 20일째다.
- 덧붙이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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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은 기자는 미디어충청 기자입니다. 이 기사는 미디어충청에도 게재됩니다. 참세상은 필자가 직접 쓴 글에 한해 동시게재를 허용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