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노이에스도이칠란트>에 따르면, 수단 등 아프리카 출신의 이 난민들은 2012년 10월 6일 독일 남단 뷔르츠부르크에서 28일 간의 도보 행진을 통해 베를린에 도착했던 이들이다. 당시 이들은 강제추방 중단, 노동허가와 공동숙박 의무 폐지를 요구했고 베를린 오라니엔광장에서 농성을 시작했었다. 10월 말 일부는 베를린 부란덴부르거토어 앞에서 난민 지위 보장을 요구하며 단식투쟁을 진행하다가 그해 11월 약 100명이 폐쇄돼 비어 있던 게르하르트하우프트만 학교를 점거했다. 이렇게 모인 200여 명은 빈 교실과 건물 전체에 1개 뿐인 욕실 그리고 화장실 몇 개를 공동으로 사용하며 함께 생활했다. 점거한 이들의 수는 많을 때는 400명에 달았으며 노숙인과 로마 가족도 함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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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노이에스도이칠란트 화면캡처] |
지역 정부는 이 난민들에 대해 퇴거 압력을 행사하다 지난달 24일 최종 조치에 나서며 대치가 시작됐다. 구청은 새 거주 공간을 보장하겠다고 밝히며 대부분의 난민들은 다른 난민시설로 이동했지만 나머지 40여 명은 이를 거부했다. 이후 이들은 학교에 바리케이드를 쌓고 지붕 위로 올라가 강제퇴거에 맞선 점거 투쟁에 돌입한다.
난민들은 경찰 철수와 거주권 보장을 비롯해 독일 난민정책의 개혁을 요구했다. 이들은 경찰이 강제로 학교에 진입할 경우 지붕에서 뛰어내리겠다고 밝혔다.
경찰이 퇴거를 명령한 24일 약 900명의 병력이 학교 주변에 배치됐고 주변 도로는 차단막으로 폐쇄됐다. 경찰은 자발적인 퇴거를 보장한다면서도 추가적인 난민 유입을 막는다며 건물을 에워 쌓다. 또 건물 내에는 벤젠이 있다며 언론인의 출입도 제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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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노이에스도이칠란트 화면캡처] |
고립되지 않은 지붕 위의 사람들
그러나 난민들의 투쟁이 고립된 것은 아니다. 독일과 유럽의 다양한 도시에서 연대 투쟁이 계속됐고, 이 점거 투쟁은 모두가 주목하는 이슈가 됐다. 독일의 좌파, 아나키스트 등 다양한 운동 진영은 난민들이 투쟁에 나서자 학교 앞에서 연대 농성을 시작했다.
활동가뿐 아니라 마을 주민도 난민들의 든든한 동지가 됐다. 주민들은 집 창밖으로 “난민 환영”, “경찰 폭력 중단하라” 등의 현수막을 내걸고 지지 목소리를 냈다. 지난달 28일에는 난민들을 지지하는 시위에 전국에서 5천명이 모였다. 독일 예술가와 지식인들은 난민 투쟁에 지지 입장을 발표했으며, 벨기에 독일대사관 앞에서는 수십 명이 퇴거 조치에 항의하다 23명이 일시적으로 구금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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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노이에스도이칠란트 화면캡처] |
난민 위한 13세, 15세 청소년들의 교육파업...“단속이 아닌 도움을”
난민들의 투쟁을 적극 지지하고 연대한 세대는 십대들이었다.
경찰의 퇴거 명령 1주일 후인 지난달 30일, 베를린 경찰청은 퇴거 명령에 협조하지 않을 경우 이달 1일 강제퇴거하겠다는 최후통첩을 했다. 독일 전역에서 차출된 천여 명의 경찰이 배치됐다. 녹색당이 집권한 지역 구청은 강제퇴거는 없다고 밝혔으나 사실상 경찰의 퇴거 조치를 용인한 상황이었다.
그러자 1일 인근 초중등학교와 대학 학생 2천여 명은 교육파업을 하고 학교로 몰려와 농성 투쟁에 나섰다. 시위에 참여한 15세의 아미나는 “난민은 단속이 아닌 도움이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13세 마르고트는 “농성장 때문에 불편하지 않다”고 밝혔다. 10대들은 경찰의 강제 퇴거에 맞서 학교 주변 도로에서 연좌시위를 벌이며 경찰과 대치했다.
그러나 경찰은 연좌한 이들을 강제 해산시켰다. 이 과정에서 최소 3명의 청소년이 부상을 입었다. 1명은 코뼈가 부러졌고 다른 1명은 한쪽 눈의 시력을 잃었다. 경찰은 항의하는 10대들에게 페퍼스프레이를 뿌렸고 삽시간에 아수라장이 됐다.
말 바꾸기를 한 지역 녹색당 정치인들과 경찰의 과잉진압에 대한 논란이 확산되자 2일 오후 지역당국은 난민과의 재협상에 나섰고 합의를 이뤄내며 난민들의 승리로 이어졌다. 그러나 이들의 승리는 사실 부분적이다.
3일 <노이에스도이칠란트>에 따르면, 구청은 2일 저녁 9시 30분에 퇴거 계획을 철회했다. 난민은 학교 3층의 제한된 공간에 머물 수 있게 됐다. 경찰은 단계적으로 차단막을 철거하고 철수할 방침이다. 그러나 난민들의 추가 유입은 금지됐으며 거주권 또한 보장되지 않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