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같은 우려는 대표적인 내부고발 언론네트워크 중 하나인 ‘내부고발연합언론(AWP)’이 벨기에 시간으로 지난 17일 전자상거래, 데이터 이동 등에 관한 ‘모든 서비스에 적용되는 새 조항(2014년 4월 25일)과 부속서(2014년 9월 5일)’를 공개하면서 제기됐다. 지난 6월 19일 폭로 전문 웹사이트 위키리크스가 공개한 TISA 금융서비스 분야 부속서 초안에 이어서 2번째로 유출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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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개된 협정문안 일부 [출처: https://data.awp.is/filtrala/2014/12/17/19.html] |
주민번호 사용하는 한국에 특히 파괴적
AWP가 공개한 TISA 협상초안 X.4조에는 “해당 국가는 타국의 서비스 공급업자가 서비스 사업 행위로 수행된 개인 정보 등 정보의 이전, 접근, 가공, 저장 행위를 해당국가의 영토 내, 외부에서 막아서는 안 된다”고 분명히 한다. 말하자면, 한국이 TISA를 맺을 경우 미국계 씨티은행이 한국 예금주의 개인정보를 저장, 가공하고 해외로 이전해도 속수무책이 된다. 의료정보와 같은 민감한 내용도 마찬가지다.
이럴 경우 13자리의 주민등록번호 제도를 운영해온 한국에 TISA가 미치는 영향은 특히 막대할 수밖에 없다. 현재까지 한국은 유럽연합, 미국과 FTA를 체결하면서 금융정보를 해외로 이전하고 처리, 활용할 수는 있도록 했지만 주민번호 이전 자체는 금지했다. 그러나 이번에 공개된 협상문은 외국계 기업의 국내 ‘개인정보’에 대한 이전, 접근, 가공, 저장 행위 금지를 못해 주민번호에 대한 빗장마저 풀릴 공산이다.
애초 금융회사들이 비용을 문제로 국가마다 금융정보를 처리하는 전산 설비를 자국으로 옮기고자 해 금융분야에 대해서는 주민번호 이전이 허용될 것이라는 우려가 있었다. 그러나 이번에 공개된 협정문을 보면 개인정보 이전 금지를 제한하는 내용은 “모든 서비스에 적용되는 새 조항”이어서 금융분야 뿐 아니라 모든 서비스 분야에 대해 주민번호를 포함한 개인정보 이용과 이전, 가공이 허용될 전망이다. TISA가 한미FTA 보다 나아간 것이라는 우려가 현실화되는 셈이다.
즉, TISA가 체결되면 앞으로 외국계 기업은 개인정보와 기업이 일반적으로 요구하는 전화번호, 주소 등 개인정보 외에 성별, 생년월일 등 주민번호까지 더해 관리하고 이용, 이전할 수 있다. 취향이나 건강, 교육 수준 등의 정보까지 손쉽게 확보할 수 있는 현실을 생각해보면 이미 한국인들의 생활 깊숙이 자리잡은 애플 등 미국계 기업들은 이젠 주민번호를 토대로 한국의 개개인의 개인정보를 보다 속속들이 마케팅에 활용할 수 있게 된다.
이러한 TISA 협상안이 유출되자 공공서비스와 정보인권을 위해 활동해왔던 국제 사회는 이미 심각한 우려를 밝히고 있다.
스페인 지적재산권 전문가 호세프 호베르 변호사는 “이것은 프라이버시의 종말”이라면서 “소비자는 서비스 공급자를 위한 연료가 되고 있다”고 밝혔다.
로자 파바넬리 공공서비스인터내셔널(PSI) 사무총장은 “유출된 기록은 TISA가 거대 기업을 위해 추진되고 있다는 우려를 확인시키고 있다”면서 “이 협상이 데이타 이전, 망중립성과 전자서명 등의 개인 권리와 어떻게 충돌할 수 있는지 각국의 정부는 분명히 밝혀야 한다”고 <가디언>에 지적했다.
이외 개인정보 사용을 허용하는 내용 외에도 전자상거래, 전자서명, 빅데이터, 망중립성 등도 이번 TISA 협상 대상에 포함된 것으로 밝혀졌다. 뿐만 아니라 법률 서비스, 사교육, 동물 관리, 부기를 포함한 세무서비스 등 협상 대상은 실로 광범위하다고 언론들은 지적하고 있다.
프라이버시도 없는 무한한 금융자유화 노정
TISA는 서비스산업에 대한 규제 완화를 목표로 하는 다자간 협정이다. 원래 세계무역기구(WTO)가 2001년 11월 다자간 무역 협상 도하개발아젠다(DDA)를 추진해왔지만 개발도상국이 반발하면서 교착 상태가 지속됐다. 미국과 유럽연합은 WTO의 일괄타결 원칙 때문에 한발짝도 더 나가지 못하자 이를 돌파하기 위해 외곽에서 TISA를 추진하는 꼼수를 펴왔다. 협상이 성공할 경우 다른 나라들에 강요될 것이라는 점은 불 보듯 뻔하다.
2012년 2월 개시된 TISA 협상에는 이미 50개국이 참가하고 있고 미국의 서비스기업연합(CSI) 등 기업 로비스트들이 적극적으로 개입해 로비를 벌이고 있지만 지난 6월에야 ‘위키리크스’가 금융서비스 부분 부속서를 공개하면서 어떤 내용들이 테이블 위에 있는지 처음으로 알려졌다. 이 초안은 비밀로 유지돼 왔으며 참가국은 협상 기간 뿐 아니라 협약 체결 후 5년 동안 비밀 유지의 의무를 진다.
TISA는 또 한미 FTA처럼 역진방지조항으로 인해 한번 개방하면 되돌릴 수도 없다. 민간서비스 뿐 아니라 수도, 의료, 에너지 등 공공서비스에도 광범위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우려되고 있다.
TISA는 특히 금융서비스 분야에 대한 규제 해지를 주요 목적으로 해 해외 활동가들은 ‘뱅스터(은행과 강도의 합성어로 국제 강도은행단)만을 위한 협정’이라고 부른다. 협상이 타결될 경우, 2008년 금융 위기 후 세계 경제 위기를 야기한 금융 분야에 대한 도드-프랭크법 등 미국과 유럽 정부들의 규제는 제한돼 무제한적인 금융 자유화가 시작될 것이라는 염려도 크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