튀니지 혁명 후 첫 번째 대선에서 구 독재세력인 나다 투니스의 베지 카이드 에셉시 후보가 결선에서 55.68%의 득표율로 당선됐다. 가난한 남부에서는 이 결과에 반발하는 소요도 일어났다.
에셉시 후보는 당선이 확정된 뒤 “나는 이 승리를 혁명의 순교자들에게 헌사한다”면서 “우리는 모두와 협력할 것”이라고 화해와 협력의 제스처를 내비쳤다. 그는 튀니지 초대대통령으로 30년 동안 장기 집권한 하비브 부르기바 시절 내무, 국방과 외무장관직을 맡았던 인물이다. 튀니지 혁명으로 물러난 벤 알리 정권에서는 국회 의장으로도 일했다.
이 때문에 에셉시에 반대하는 이들은 그가 독재 정치를 되풀이할 것이라면서 반발해왔다. 22일 오전 튀니지 남부에서는 수백 명의 청년들이 타이어를 불태우고 거리를 봉쇄하며 선거 결과에 반발했다. “모든 상점이 문을 닫았다. 그들은 구체제 복귀에 반대한다고 외치고 있다”고 지역 주민은 <알자지라>에 22일(현지시각) 말했다.
에셉시와 경쟁한 공화의회당의 몬세프 마르주키 후보는 이슬람 진영과 빈민층으로부터 높은 호응을 얻었지만 44.32%에 그쳤다. 인권변호사인 그는 벤 알리 시절 수감된 대표적인 야권 인사였다.
혁명 후 집권한 엔나흐다...혁명 정신 보단 기득권층에 손길
구독재 진영의 복귀에는 혁명 후에도 계속된 실업, 인플레이션 증가를 해결하기 보다는 기존 기득권층과의 화해를 우선했던 엔나흐다당의 정치적 한계가 주요 원인으로 작용한 것으로 전해진다. 또 이 지역에서 확산되고 있는 이슬람 근본주의 테러 확산을 배경으로 기득권층의 주류 언론이 엔나흐다당을 매도한 이슬람주의 악마화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풀이된다.
미국 진보언론 <오픈데모크라시> 최근호에 의하면, 튀니지 언론은 이슬람주의를 악마화하는 데 핵심 역할을 했으며 사회를 이슬람화 할 것이라면서 엔나흐다당을 매일 같이 공격했다.
튀니지 중부의 도시의 한 유권자도 “아침 6시 투표소에 나란히 자유선거의 의미를 음미했다”면서 “정치 경험이 풍부한 에셉시가 이슬람 과격파로부터 나라를 구하고 안정을 실현하기 위한 최선의 선택”이라고 외신에 말했다.
튀니지 공산당 등 9개 정파가 동맹한 인민전선 출신의 함마 함마미 후보는 1차 선거에서 7.82%를 얻으며 3위를 기록했지만 결선에는 진출하지 못했다. 1차 선거에서 에셉시 후보는 39%, 인권변호사이자 친 엔나흐다당 후보 경쟁자는 33%를 얻었었다. 투표율은 지난 총선 당시 약 70%에서 60.11%로 떨어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