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명제를 반대한다. 이 기사는 논쟁중
인터넷실명제 반대 공동대책위원회

실명제를 반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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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의 9.11, 한물간 잡지사 테러는 무엇을 도발하는가?

[해외시각] 감시와 탄압, 인종적 갈등 격화, 보복 음모 우려

마스크를 쓴 3명의 무장괴한이 풍자 주간지 샤를리 엡도 사무실에 들어와 12명을 살해했다. 프랑스 정치인과 논설위원들은 갑자기 딜레마에 빠졌다.

암살자는 도망갔다. 하지만 오래가진 못할 것이다. 이 남성들은 잘 훈련된 살인자들이다. 샤를리 엡도는 수년 전 선지자 모하메드를 조롱하는 만화를 게재한 뒤로 정기적으로 살해 위협을 받았다. 하지만 이 논쟁은 대체로 잊혀진 듯했고, 주간지 판매부수는 (언론사가 대개 그렇듯) 감소했으며, 경찰보호는 느슨해졌다. 경계근무를 했던 2명의 경찰은 괴한들이 편집회의가 진행되던 사무실에 들어가기 전 쉽게 살해됐다. 그렇게 많은 만화가와 작가가 동시에 있던 것도 드문 일이었다. 12명이 자동 무기로 학살당했고, 다른 11명은 부상을, 일부는 치명상을 입었다.

현재 이 잡지의 대표 편집자이자 샤릅으로 알려진 만화가(스테판 샤르보니에, 47세) 외에도 희생자 중에는 프랑스에서 가장 유명한 2명의 만화가 카뷔(장 카뷔, 76세), 볼랭스키(조르주 볼랭스키, 80세)도 포함됐다. 프랑스에서 두서너 세대는 이곳 좌파의 정서를 순하게 그려냈던 카뷔와 볼랭스키와 함께 자라났다.

살인자들이 현장을 떠날 때, 1명은 다시 돌아와 부상을 입고 거리에 쓰러진 경찰 1명을 죽였다. 그리고 “선지자는 복수했다!”는 소리를 지르곤 북동쪽 교외로 달아났다.

군중은 샤를리 엡도 사무실이 있는 작은 거리와 그리 멀지 않은 파리의 레퓌블리크 광장에 자발적으로 모여들었다. 용감한, 그러나 사실은 아닌 슬로건이 퍼졌다. “우리는 샤를리다!.” 하지만 그들은 아니다. “샤를리는 살아있다.” 아니다. 그렇지 않다. 그것은 전멸한 것과 다를바 없는 상태다.

모두가 충격을 받았다. 말할 필요도 없는 일이다. 이는 냉혈한 살해이자 용서받지 못할 범죄다. 이 또한 말할 필요도 없다. 하지만 모두 그것을 말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모두 “우리는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이 우리를 위협하도록 그리고 우리의 표현의 자유를 빼앗도록 허용하지 않을 것”이라는 식의 더 많은 말들을 하게 될 것이다. 프랑수아 올랑드 대통령은 프랑스는 이 암살범들에 맞서 단결할 것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이런 종류의 잔학 행위에 대한 초기 반응은 예상할 수 있는 일이다. “우리는 위협받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우리의 자유를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 아니, 아니다. 확실히 최고로 미친 종교 광신자일지라도 유머 작가를 학살해서 프랑스를 이슬람으로 개종시킬 것이라고 상상할 수는 없을 것이다. 결과는 정반대가 될 것이 확실하다. 반무슬림 정서의 확대. 이것이 도발이라면, 그럼 이 도발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리고 이것은 무엇을 도발하는 것인가? 명백한 위험은, 9.11처럼 경찰 감시를 강화하고, 프랑스의 자유는 살인자들이 추구하는 방식이 아닌, 포스트 9.11 아래 미국에서 자유가 제약됐던 방식으로 모조 애국법을 통해 진정으로 약화될 것이라는 점이다.

감시와 탄압, 인종적 갈등 격화, 보복 음모 우려도

개인적으로 나는 선지자를 모욕하는 만화를 -또는 예수에 관한 것이든지- 싣곤 했던 샤를리 엡도의 도발적인 표지를 좋아한 적이 없다. 취향의 문제다. 나는 지저분하고 외설적인 그림이 종교를 문제로 삼든 당국을 문제로 삼든 효과적인 논쟁이 될 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내가 좋아하는 방식이 아니다.

살해된 이들은 샤를리 엡도 그 이상이다. 카뷔와 볼랭스키의 그림들은 많은 출판물에 등장했으며, 샤를리 엡도를 결코 사서 보지 않는 독자층이 있다. 편집회의에 나온 모든 예술가와 작가들은 ‘신성을 모독하는’ 만화와는 아무런 관련도 없는 이들이었다. 언론의 자유는 또 때때로 저속하거나 바보가 되는 것을 위한 자유이기도 하다.

샤를리 엡도는 사실 표현의 자유를 위한 모델이 아니었다. 그것은 결국 많은 ‘인권들’처럼 ‘독재자’에 맞선 미국 주도의 전쟁을 옹호했다.

2002년, 당시 편집장이었던 필립 발은 노엄 촘스키를 반미주의자이자 이스라엘과 주류 언론에 대해 과도한 비평을 한다고 비난했었다. 2008년, 샤를리 엡도의 또 다른 유명 만화가 씨네는 사르코지 대통령 아들 장이 유명 가정용 기기업체 상속녀와 결혼하기 위해 유대교로 개종할 것이라는 뉴스를 인용한 짧은 메모를 기록했었다. 씨네는 “그는 장차 크게 될 것이다, 이 녀석”이라는 코멘트를 달았다. 이것 때문에 씨네는 ‘반유대주의’라는 이유로 필립 발에게 해고됐다. 씨네는 즉시 경쟁지를 찾아 샤를리 엡도의 많은 독자를 데려 갔다.

간단하게 말하면, 샤를리 엡도는 현재 프랑스 좌파의 ‘정치적으로 옳은’ 노선과는 어긋난 극단적인 사례였다. 이 아이러니는 외관상 이슬람주의 살인자가 저지른 살해 공격이 대중적 호소력을 잃은, 철지난 이 시든 잡지를 갑자기 언론의 자유와 표현의 자유라는 영원한 구호로 신성화하고 있다는 점이다. 살인자들이 무엇을 의도했건, 이것이 그들이 성취한 것이다. 또 무고한 인명을 앗아가면서 그들은 분명 이 세계의 잔혹한 혼란에 대한 감각을 심화시켰고, 프랑스와 유럽에서의 인종 집단 사이의 불신을 가중시켰다. 뿐만 아니라 의심할 여지없이 불길한 상황도 만들었다. 의혹의 시대에, 음모 이론이 증식할 것이라는 점은 확실하다.


[원문]http://www.counterpunch.org/2015/01/07/what-to-say-when-you-have-nothing-to-say/
[필자]다이애나 존스턴(Diana Johnstone)은 미국 출신으로 파리에서 살고 있으며 <바보 십자군: 유고슬라비아, 나토와 서방의 망상들>의 저자다.
[번역] 정은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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