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명제를 반대한다. 이 기사는 논쟁중
인터넷실명제 반대 공동대책위원회

실명제를 반대한다.

 

공직선거법 제82조6에 의하면, 선거시기에 실명확인 시스템을 갖추지 않은 인터넷 언론사에는 1천만원 이하의 과태료가 부과됩니다. 그러나 선거시기 인터넷 실명제는 국가가 인터넷 언론과 국민에게 강요하는 검열이자, 익명성에 바탕한 표현의 자유와 여론 형성의 권리를 침해합니다. 정보인권 단체로서 진보넷은 선거시기에도 네티즌이 자유롭게 의견개진을 할 수 있도록, 실명제를 거부한 인터넷언론의 기사들을 미러링하고 그에 대한 덧글란을 선거기간 동안 운영합니다. 실명제 반대 행동 참여하기실명제 반대 행동 참여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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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씩 벽장문을 열고 있는 HIV/AIDS감염인 커뮤니티

[기획연재] 이제 그들을 맞이할 준비를 하자

[편집자주] 동인련 HIIV/AIDS인권팀에서는 3회에 걸쳐 HIV/AIDS를 둘러싼 국내 이슈들을 다룰 예정입니다.

1) 에이즈와 동성애혐오 (호림)
2) 에이즈와 건강권 (혜민)
3) 에이즈와 커뮤니티 (정욜)

2005년인지 6년인지 잘 모르겠다. 이제는 참석한 분들의 얼굴도 가물가물하다. 조심스럽게 첫 발을 내딛었던 HIV/AIDS감염인 자조모임과의 만남. 한국HIV/AIDS감염인연대 카노스 후원의밤 자리였다. 그곳엔 정체불명의 바이러스가 아니라 ‘사람’이 있었다. 구세군에서 카노스 회원들을 처음 만났다던 도자기 공방주인은 돈 한 푼 없고 어디 갈 곳 없는 이들에게 자신이 일하는 공간 한 켠을 내주었다. 책상 하나가 카노스 사무실의 전부였다. 축축하고 구슬픈 노랫소리가 성북동 지하 공방에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행사의 마지막순서였다. 한 때 가수생활을 했다는 그 분은 아주 여리여리한 목소리로 분위기를 한층 끌어올리고 있었다. 20명 남짓한 사람들의 웃음소리, 박수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그리고 이어진 참석자 소개시간, 순간 나를 어떻게 소개해야 할 지 고민했다. ‘동성애자인권연대’ 축하사절단으로 왔다는 말을 전하고 싶었지만 입안에서만 계속 맴돌았다. 나는 에이즈인권운동하는 한 사람으로 소개했다. 그래도 이 자리에 오기까지 얼마나 오랜 시간이 걸렸던가. 같은 정체성을 가지고 있어도 나는 HIV에 감염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초대받지 못했다. 문제는 소문이었다. 좁디좁은 게이커뮤니티 바닥에 HIV감염인이라고 소문이라도 나면 어떡할 거냐는 반응에 모임에 나가는 게 쉽지 않았다. 그런 내가 후원의 밤이라는 중요한 자리에 초대를 받았다니 이제 이렇게 한 발 한 발 내딛으면 될 거라 생각했다. 에이즈인권운동이 갓 시작되었던 무렵, 감염인 당사자들은 거칠었어도 스스로의 목소리를 내기위해 모이고 말하고 있었다.

카노스 회원들과 인권활동을 함께 하면서 친밀감을 쌓아갈 무렵 우려했던 상황을 마주했다. 동성애자인권연대 활동을 하며 만났지만 최근 몇 년 사이 보지 못해 안부가 궁금했던 A를 이곳에서 다시 만난 것이다. 자조모임 회원들은 서로를 별칭으로 불렀기 때문에 누가 누군지 잘 몰랐다. 순간 너무 놀라 가벼운 인사만 하고 지나갔지만 마음은 복잡했다. 그 때 처음으로 알았다. 내가 카노스 회원모임에 참여하는 건 자조모임을 필요로 하는 누군가의 참여를 막고 있는 건지도 모르는 거라고. 그는 더 이상 카노스 모임에 나오지 않았다. 종로 낙원동 거리에서 마주치길 몇 번, 어떻게 말을 건네야 할 지 몰라 마음속으로 안부만 물으며 그렇게 시간을 보냈다. 그러던 어느 날 평소 자주 가던 게이바에서 그를 만났다. 아는 척을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내가 아닌 척 등을 돌리고 앉아 있었는데 그가 날 불렀다. 그리고 고맙다고 했다. HIV확진판정 이후 사람들을 보지 못할 만큼 괴로워했다던 그, 내가 그의 자리를 뺏은 건 아닌지 걱정을 많이 했다고 하니 뭘 그런 거 가지고 그러냐며 대수롭지 않게 웃으며 넘어갔다. 같이 웃었고 아주 긴 시간 술자리를 함께 했다.


2011년 제10차 아시아태평양에이즈대회를 계기로 감염인 자조모임들의 움직임이 활발해졌다. 공개적인 오픈광장에서 자신들의 삶을 용기 있게 말하고 한국 HIV/AIDS정책을 발표하는 자리에 들어가 당사자의 목소리를 직접 전하기도 했다. 이 활동을 계기로 2012년 한국HIV/AIDS감염인연합회 KNP+가 구성되었다. 인터넷 카페로만 존재했던 감염인 자조모임 여섯 곳이 오프라인으로 처음으로 모인 것이다. 발족식이 있던 그 날 큰 기대를 가지고 강당을 가득매운 사람들, 자신들의 활동계획을 떨리는 목소리로 발표했던 활동가들. 그 날 감염인 인권운동의 새 시작은 모두에게 감동이었다. 변변한 사무실은 없었지만 중요한 건 물리적 공간이 아니라 ‘무언가 바꾸고 싶은’ 그 마음들이었다.

하지만 활동가들은 경제적으로 너무 어려웠다. 대다수 기초생활수급자로 살아가는 사람들이었기에 생계가 불안정했다. 활동이 잘 될 리가 없었다. 후원회원을 모집하는 활동은 꿈도 꾸지 못했다. 모이는 것도 쉽지 않았다. 그렇다고 떠나는 사람들을 붙잡거나 원망하지는 않았다. 그러던 차 KNP+ 주요활동가들이 (나는 그들을 그냥 형님이라고 부른다) 나에게 간사 역할을 해달라는 제안을 했다. 에이즈인권운동을 하면서 감염인 자조모임 운영의 어려움을 가깝게 지켜봐왔기에 이 제안을 거절할 수가 없었다. 인권운동의 경험이 거의 전무한 분들이었고 KNP+ 활동이 안정될 때까지 도움을 주는 역할은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다시 한 발 한 발 다가갈 준비를 하고 있다. 최근에서야 거의 1년 만에 회의를 재개하면서 조직의 형태를 조금씩 갖춰나가고 있다.

KNP+ 간사를 맡게 되면서 좋은 점은 건강나누리 정회원 자격이 주어졌다는 것이다. 건강나누리는 KNP+ 회원단체이자 감염인 당사자들이 건강정보를 나누고 친목을 위해 인터넷 카페로 만들어진 가장 큰 자조모임이다. 처음에는 감염인들의 현실을 잘 알 수 있을 거라는 생각에 특별회원자격이 주어졌다고 자랑도 했지만 지금은 소위 ‘눈팅’만 할뿐 답 글 하나 단 적이 없다. 건강 나누리 가입을 위해선 감염 확정시기, 약 복용유무, 복용약명까지 아주 자세한 개인정보를 기입해야 정회원 자격이 주어진다. 비감염인 가입 절대불가라는 문구도 눈에 띈다. 가입조건이 까다롭다. 용기 있게 발을 내딛은 사람들에게 또 다시 자리를 뺏는 것은 아닐 지 걱정부터 앞선다. 하루에도 몇 번씩 기웃거리고 있지만 그곳의 많은 글들은 가슴을 답답하게 한다. 같은 질병을 가지고 있다는 마음 때문에 편하게 복잡하고 어려운 마음을 토로하는 이들 앞에서 나는 과연 이곳에 있는 것이 맞는지 늘 고민하고 있다.

2011년 이후 대구․경북지역에도 지역모임이 처음으로 생겼고, 10-20대 감염인들도 자발적인 자조모임을 만들었다. 당장 이들의 연합이 대단한 활동을 할 수 있을 거라고 기대하지 않는다. 하지만 나는 늘 이들의 용기에 감탄하고 성장을 기대한다. 현재 한국의 HIV/AIDS인권현실은 감염인이라는 사실만으로도 격리 조치했던 80년대로 돌아간 것 같다. 하지만 감염인 자조모임들은 스스로 모여 이야기하고 화내면서 조금씩 벽장문을 열고 있다. KNP+는 곧 HIV확진판정난지 2년 이내의 감염인들을 위한 교육을 시작할 예정이다. 자신들이 거쳐 왔던 힘든 시기를 반복하지 않도록 스스로 긍정하며 살아갈 수 있도록 도움을 주고자 하는 마음 앞에 나는 오히려 반성하고 이들의 마음을 쫓아가기에 버겁다는 생각도 든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그들과 나란히 서서 함께 화내고, 그들의 이야기를 판단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귀 기울여 주는 것이다. 얼굴이 노출될까 두려워하는 이들 옆에 함께 마스크를 써주고 기꺼이 감염인이 되어주자. 구체적으로는 작은 사무실이라도 구할 수 있도록 KNP+의 후원인이 되어주는 것도 좋겠다. 사람 때문에 상처받아 떠나고 생활고에 허덕이는 사람들. 잘 지내고 있는지 궁금하다. 그들의 헌신과 노력이 있었기에 지금의 KNP+가 있을 수 있었다. 조금씩 벽장문을 열고 있는 HIV/AIDS감염인들, 이제 그들을 맞이할 준비를 하자.

* KNP+ 홈페이지는 http://knpplus.org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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