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20일 오전 9시경, 서울 동대문 앞 횡단보도에서 목에 사다리를 걸고 '장애등급제 폐지'를 요구하는 활동가들 |
![]() |
▲ 20일 오전, 420공투단 활동가들이 비타500 이미지와 함께 '이완구 국무총리님, 장애등급제 폐지해주십시오'라고 적힌 현수막을 펼쳐 든 모습 [출처: 420공투단] |
비슷한 시각인 오전 11시, 여의도 63빌딩 그랜드볼룸홀에서는 정부의 공식 장애인의 날 행사가 열렸다. 보건복지부와 장애인의날행사추진협의회가 공동 주최하고 한국장애인개발원이 주관한 이 행사에는 이완구 국무총리, 문형표 복지부 장관 등 정부 고위급 인사와 국회 보건복지위 소속 국회의원 다수, 장애인 단체 임직원 등이 참여했다.
이 자리에서는 장애인복지 유공자 16명에게 각각 국민훈장, 국민포장, 대통령표창, 국무총리표창이 수여되었으며, 정부가 ‘장애를 훌륭하게 극복한’ 장애인 3명을 발굴해 ‘올해의 장애인상’을 시상하기도 했다. 정부 공식행사는 이처럼 성대하게 치러졌지만, 정작 거리에서 장애인들이 처절하게 요구하는 생존권의 목소리는 찾기 어려웠다.
정부가 이날 행사에서 천명한 메시지는 ‘더불어 행복한 사회, 바른 말 쓰기부터’라는 선언 아래 제시된 “장애우·장애자는 장애인으로, 일반인·정상인은 비장애인으로”라는 것뿐이었다. 거리에서 터져 나온 장애인 당사자들의 절박한 요구를 담기에는 너무나 부족해 보였다.
이 허전함을 대신한 것은 영양가 없는 말 잔치였다. 남미 순방 중인 박근혜 대통령은 사전에 촬영한 축하 영상메시지를 통해 “정부는 장애를 딛고 열심히 노력하시는 분들이 끊임없이 발전해나갈 수 있도록 뒷받침해 드리고, 의료, 교육, 직업재활 등 각자의 상황과 형편에 맞는 맞춤형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도록 더욱 노력할 것”이라면서 “편의시설을 비롯한 사회적 인프라를 확대해 가면서, 차별적인 제도와 관행을 세심하게 살펴 개선하는 무형의 인프라를 구축하는 데에도 더욱 관심을 기울일 것”이라고 밝혔다. 애초 대선에서 장애등급제를 폐지하고 장애인권리보장법을 제정하는 한편, 장애인활동지원 24시간 보장, 저상버스 100% 확충 등 구체적인 정책을 제시했던 것과 비교할 때 너무나 추상적이고 모호한 말 뿐이었다.
그나마 직접 축사에 나선 이완구 국무총리는 정부가 현재 추진 중인 정책과제에 대해 언급하기는 했다. 이 총리는 “보다 세밀한 보살핌이 필요한 중증장애인을 위한 종합대책을 추진할 것”이라며 “오는 11월부터 시행되는 발달장애인 관련법을 계기로 이분들의 특성과 요구에 맞는 서비스를 지원할 수 있는 체계도 마련”하겠다고 하는 한편 “내년까지 장애종합판정체계 구축 등 서비스 전달체계를 개편하여 꼭 필요로 하는 서비스를 적절하게 제공할 수 있도록 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이 총리가 언급한 장애종합판정체계 구축은 기존의 장애등급제를 단지 ‘점수제’로 전환하는 것에 불과하다는 비판을 받고 있는 실정이다. 그럼에도 그는 어떠한 해명도 없이 이를 기존 정부 계획대로 추진하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또한 그는 최근 시민사회로부터 많은 비판을 받고 있는 복지예산 3조 원 절감 방안, 지자체 자체 복지사업에 대한 중앙정부의 제재조치에 대해서도 어떠한 언급을 하지 않았다.
![]() |
▲ 장애인의 날 기념식에 참석한 이완구 국무총리 |
![]() |
▲ '장애인 인권헌장'을 낭독하고 있는 배우 차승원 씨(왼쪽)와 장애아동 신은성 양(오른쪽) |
이어 이날 ‘장애인식개선 홍보대사’로 위촉된 배우 차승원 씨와 장애아동 신은성 양(여, 10세)이 <장애인 인권헌장>을 낭독했다. 「장애인 인권헌장」은 1975년 유엔 총회에서 채택된 <장애인 권리선언>을 근거로, 한국의 특수성에 맞춰 손질해 1998년 12월 9일 국회에서 선포된 것이다.
이 헌장은 “장애인은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고 전제하면서, △장애를 이유로 한 정치·경제·사회·교육 등 모든 영역에서 차별 금지 △소득 주거 의료 및 사회복지서비스 등을 보장받을 권리 △자유로운 이동과 시설이용에 필요한 편의 제공 및 의사 표현과 정보 이용의 권리 △능력에 따라 직업을 선택하고 정당한 보수를 받을 권리 △가족과 함께 생활할 권리를 가지며, 시설생활이 필요한 경우에도 생활조건은 같은 나이 사람의 생활과 가능한 같아야 함 등 총 13개 항을 명시하고 있다.
이미 17년 전 선포된 헌장이 낭독되기는 했지만, 이 헌장에 명백히 반하는 현재 장애인들의 현실에 대한 이야기는 나오지 않았다. 바로 전날인 19일 보건복지부가 발표한 <2014년 장애인 실태조사>에서도 장애인의 72.6%가 차별받고 있다고 답하고, 학교 입학·전학 시 차별을 느낀다는 비율은 30.7%, 취업 시 차별을 느낀다는 비율은 2011년 조사보다 상승한 35.8%에 달하는데도 말이다. 오히려 이날 상영된 정부 홍보영상에서는 객관적인 데이터와 상반되는 한 장애대학생의 “장애인이기 때문에 차별받고 있다고 느껴본 적이 없다”는 발언만 나올 뿐이었다.
이날 보신각에서 열린 장애인차별철폐 투쟁대회에 참석하고 난 뒤 정부 공식 행사 소식을 접한 오산장애인자립생활센터 오은숙 활동가는 “4월 20일 하루만 이런 요란스런 행사를 할 뿐, 장애인들의 절박한 요구에 대해서는 어떠한 언급도 하지 않는 정부의 행태를 보면서 착잡한 기분이 든다”며 “장애인을 하루만 기억하고 버려도 되는 것처럼 취급하는 이런 장애인의 날 행사는 왜 하는지 모르겠다”라고 소회를 밝히기도 했다.
![]() |
▲ 장애인의 날 정부 행사에 동시에 입장 중인 문형표 복지부 장관(왼쪽)과 이완구 국무총리(오른쪽) |
- 덧붙이는 말
-
하금철 기자는 비마이너 기자입니다. 이 기사는 비마이너에도 게재됩니다. 참세상은 필자가 직접 쓴 글에 한해 동시게재를 허용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