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명제를 반대한다. 이 기사는 논쟁중
인터넷실명제 반대 공동대책위원회

실명제를 반대한다.

 

공직선거법 제82조6에 의하면, 선거시기에 실명확인 시스템을 갖추지 않은 인터넷 언론사에는 1천만원 이하의 과태료가 부과됩니다. 그러나 선거시기 인터넷 실명제는 국가가 인터넷 언론과 국민에게 강요하는 검열이자, 익명성에 바탕한 표현의 자유와 여론 형성의 권리를 침해합니다. 정보인권 단체로서 진보넷은 선거시기에도 네티즌이 자유롭게 의견개진을 할 수 있도록, 실명제를 거부한 인터넷언론의 기사들을 미러링하고 그에 대한 덧글란을 선거기간 동안 운영합니다. 실명제 반대 행동 참여하기실명제 반대 행동 참여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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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진 사람들... 일상의 참사, 산재사망

[기획1] 우리는 일을 멈출 수 없었다


2009년 34명 이후 울산의 산재 사망자는 꾸준히 증가했다. 2013년에는 53명이 자신의 일터에서 사고로 죽었다. 올해 들어 6월까지 잠정 집계된 울산지역 산재 사망자는 19명이다.

울산지역 산업재해율은 2009년(0.82)부터 2013년(0.62)까지 꾸준히 감소했다. 재해율은 줄었고, 사망자는 늘었다. 중대사고가 많이 일어났다는 뜻이다.

죽음은 단편적으로 알려졌다. 세월호 참사처럼 한 번에 많은 사람이 목숨을 잃어야 관심이 모인다. 산업 현장에선 한명씩, 한명씩 일상처럼 노동자들이 죽어가도 제대로 조명 받지 못했다.

“119 신고를 왜 안해요?” 질문은 순진했다. 마주 앉은 중년 노동자의 주름이 접혔다. 웃는 건지 우는 건지 알 수 없는 표정이다. 산재 사망사고를 다루는 기획기사를 준비하면서 만난 노동자들의 한결 같은 반응이었다. 기자는 그들이 느끼기에 어이없는 질문을 계속 할 수밖에 없었다.

사업주의 눈치 때문에 동료의 사고조차 외부에 알리지 못한다. 병원 가는 것도 눈치 봐야 한다. 먹고 살기 위해서 남의 이야기에 관심을 끊어야 한다. 모두 먹고 사는 현장, 일상에서 벌어지는 일이다. 일상에서 “가만히 있으라”가 통용된다. 취재는 그래서 시작됐다. 일상의 “가만히 있으라”가 만들어내는 무시무시한 일상의 참사를 알리고 싶었다.

일하다 죽은 노동자의 이야기를 모두 4차례에 걸쳐 싣는다. 올해 일어난 산재사망사고 19건 중 언론을 통해 알려진 사망사고 13건을 중심으로 취재했다. 언론으로 알려지지 않은 죽음은 접근조차 어려웠다. 크게 자동차, 조선, 화학, 건설산업으로 분류했다.

[출처: 울산저널]

겨우내 한반도를 주름잡던 차가운 고기압이 물러나는 참이었다. 남쪽에서 조금씩 불어오는 따뜻한 기운이 힘을 써보려 움트고 있었다. 바다에서 불어온 남동풍은 태백산맥을 넘지 못하고 눈을 뿌려댔다. 물기를 잔뜩 머금은 눈은 한반도 동해안에 습설(濕雪)로 내려앉았다.

눈이 사흘 밤낮을 쉬지 않고 내렸다. 강원도 영동지방에는 3년 만에 기록적인 폭설이 기록됐다. 눈구름은 그것으로도 성이 차지 않았다. 태백산맥을 타고 아래로, 아래로 내려갔다. 2014년 2월 9일 눈구름은 울산에 다다랐다. 눈구름은 산과 바다를 모두 끼고 있는 울산 북구 하늘에 웅크렸다. 바다에서 부족한 수증기를 보충하며 계속 눈을 뿌렸다.

3년 만에 기록적인 폭설이 내린 날
우리는 일을 하러 가야했고
지붕이 내려 앉았다

눈구름 아래에는 북구 모듈화산업단지(효문, 연암동)가 있었다. 현대, 기아, 대우 등 완성차 조립공장의 하청업체가 밀집한 곳이다. 중견업체인 세진글라스도 이곳에 있다. 세진글라스는 차량용 유리를 제작・공급하는 업체다.

이석호(37, 가명)는 이곳에서 2년째 가공한 유리를 강화하는 일을 했다. 그는 10일에도 여느 때와 다름없이 일을 나섰다. 눈구름은 본격적으로 울산에 눈을 뿌리고 있었다. 울산기상대는 9일 자정 무렵 대설주의보를 발령했다. 이날 석호는 밤 8시부터 다음 날 아침 8시까지 일하는 야간조였다.

공장은 커다란 비닐하우스를 닮았다. 지붕을 받치는 기둥이 따로 없다. 4개의 벽면이 낮은 돔 모양의 지붕을 받치고 있다. 이날 공장에는 평상시 절반 정도의 동료들만 출근했다. 양명수(35, 가명)와 박규환(34)도 보였다.

낮부터 정상적으로 공장을 가동할 건지 논란이 있었다. 선택의 여지는 없었다. 원청인 현대차가 조업 중이었다. 원청이 일하는데 하청사가 쉬면 공급할 제품이 부족해지는 현상이 발생할 수 있다. 도요타자동차가 개발한 적기공급생산방식(JIT, Just in time) 때문이다. 세진글라스는 조업하기로 결정했다.

“지붕에 눈이 35cm 쌓였데요”, “무너지는거 아니냐” 불안한 이야기가 오갔다. 50cm까지 견디도록 설계됐다는 설명이 일말의 안도감을 가져왔다. 공장이 준공한지 3년 밖에 되지 않는 새 건물이라는 사실도 걱정을 덜어내는데 한 몫을 했다.

석호는 명수에게 “밤참 먹고 음료수 내기 탁구나 치자”고 했다. 두 사람은 자주 소소한 내기 탁구를 쳤다. 공장 밖에서는 눈을 치우는 기계 소리가 시끄러웠다. 관리직군 직원 서너명이 지게차로 눈을 밀어냈다. 그렇지 않아도 소음이 심한 공장이 더 시끄러웠다. 명수는 “날도 춥고, 별로 내키지 않는다”고 석호의 제안을 거절했다.

밤 10시 무렵 원청사인 현대자동차가 조업을 멈췄다는 소식이 들렸다. “지금이라도 퇴근해야 하는 거 아니냐” 동료 중 누군가가 말했다. 하지만 세진글라스는 일을 멈추지 않았다. 기왕에 출근했고, 작업도 하는 중이었다. 무엇보다 공장에는 조업을 멈출 권한을 가진 사람이 없었다.

이 무렵 세진글라스에서 2km 정도 떨어진 또 다른 현대차 하청업체 공장이 무너졌다. 그곳에서 19살 먹은 현장실습생이 숨졌다.

이보다 앞서 밤 9시 40분쯤에는 1.6km 떨어진 동진오토텍 공장 지붕이 무너졌다. 하지만 이미 출근을 한 세진글라스 작업자들은 아무런 소식도 전해 듣지 못했다. 누구도 근방에서 벌어지고 있는 위험을 알려주지 않았다. “만약 그때 그 소식을 들었으면 우리도 일 안했을 거예요” 명수는 뒤늦게 공허한 원망을 했다.

2시간을 더 일하고 밤참시간이 됐다. 석호는 밤참을 먹고 공장 안에서 탁구를 쳤다. 작업장과 쌓아둔 유리 원자재 더미 사이에 탁구대를 펼쳤다. 여느 때 같으면 석호와 함께 탁구를 쳤을 명수는 규환과 함께 공장 안에 있는 2층짜리 사무건물에서 쉬었다. 동료들 대부분이 2층 휴게실과 탈의실에서 쪽잠을 자는 동안 명수와 규환은 1층 강당에서 날씨 이야기를 했다.

그 순간 “꽝”하는 굉음이 들렸다. 소리를 듣고 강당 문을 나선 규환은 그 자리에서 굳어버렸다. 공장 가장 안쪽 강화공정 라인에서부터 지붕이 내려앉고 있었다. 1초, 2초. 찰나의 시간동안 규환은 넋을 놓고 무너지는 지붕을 쳐다봤다. “막상 상황이 닥치면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되요” 넋을 놓고 있던 규환이 다급하게 소리쳤다. “무너진다!”

지붕이 내려앉는데는 1분도 채 걸리지 않았다. 다행히 2층짜리 사무건물 벽면이 공장이 완전히 무너지는 것을 막았다. 미처 빠져나오지 못했던 건물 2층 동료들은 그제야 공장 밖으로 나왔다. 망연자실하게 무너진 공장을 바라보던 규환과 동료들은 2, 30분이 흐르고서야 인원 파악에 나섰다. 석호가 보이지 않았다.

19살 아들은 ‘현장실습생’이었다
업체는 원청에 아들을 파견했다
책임감 강한 아들은 폭설에도
아버지 만류에도 기어코 출근

“동서야. 니가 이렇게 넋 놓고 있으면 안 된다” 이인수(47, 여)는 멀리서 오열하는 젊은 새댁을 멍 하니 쳐다보고 있었다. 인수 앞에는 덩치는 크지만 얼굴에서 앳된 티를 벗진 못한 남자가 조용히 눈을 감은 채 누워있었다. 인수는 지금 눈앞에 벌어진 상황이 이해되지 않았다. 젊은 새댁의 울음소리만 들렸다. “동서야. 여태 회사서 아무도 안 나오는데 너희가 이러고 있으면 안 된다” 인수를 현실로 데려오려는 목소리가 자꾸만 귓전을 때려왔다.

아들 대환이는 열아홉이라는 나이가 무색하게 책임감이 강했다. 대학 가라는 말에도 집안 형편을 걱정한 아들은 지난해 11월부터 현장실습생으로 기름밥을 먹기 시작했다. 실습생 월급을 처음 받아온 아들은 대뜸 “우리집 빚이 얼마야”하고 물었다. “니가 그걸 왜 신경쓰냐”고 핀잔을 줬지만 아들은 매번 가족을 먼저 생각했다.

이날(10일)도 대환인 대책 없는 책임감으로 밤 8시부터 시작되는 야간작업을 하러 일터로 향했다. 전날(9일)부터 내리기 시작한 눈 때문에 온 도시가 마비됐지만, 막무가내였다. 기어코 집을 나서려는 아들에게 아버지(김영호, 50)는 “야, 눈이 이렇게 와서 차도 안다니는데, 어떤 회사가 니 하나 안 나온다고 문제가 생기겠냐. 가지마라”고 언성을 높였다. 하지만 대환은 출퇴근을 위해 마련한 자전거를 묶어둔 채 집을 나섰다.

밤 9시 무렵 걱정하는 아버지와 통화에서도 그는 밝고, 씩씩했다. “아빠 걱정 말아요. 조심해서 일 잘하고 있으니까” 듬직한 아들의 목소리를 듣고 아버지는 마음을 놓았다.

대환을 고용한 금영ETS는 이날 야간조업을 실시하지 않았다. 하지만 대환은 출근을 해야 했다. 그는 12월말부터 금영ETS에 기술 이전을 하러 온 원청사(현대밋숀) 작업장에서 일했다. 그와 함께 실습생으로 고용된 친구들이 일을 그만두면서 부터다. 이날 대환이 일하러 간 곳도 금영ETS 공장 중 현대밋숀이 기술 이전을 위해 사용하고 있는 곳이었다. 공장에는 현대밋숀의 작업자들과 대환을 포함해 금영ETS에서 파견한 3명만 출근했다.

“살려주세요!” 갑자기 무너진 공장 건물더미 아래에서 대환은 소리쳤다. 밤 10시 쉬는 시간에 두 동의 공장 중에 하필이면 대환이 있던 공장이 눈 무게를 버티지 못하고 무너졌다. 친하게 지내던 형이 달려가 대환의 손을 잡고 있었다는 이야기가 풍문처럼 떠돈다. 현대밋숀 직원이라는 그 형은 유족조차 만나보지 못했다. 회사는 유족에게도 대환을 구하려 한 형을 알려주지 않았다.

10시 18분에 출동한 소방대원들이 대환을 건물더미에서 구조했다. 11시가 넘어서 잠자리에 들던 엄마의 휴대전화가 울었다. 병원 관계자라는 전화기 너머의 사람이 아들의 사고 소식을 알려왔다.

아들이 죽고 한 달이 지나서야 엄마는 아들을 울산 하늘공원 납골당에 안치했다. 회사는 한 달 동안 사고를 수습하지 못했다. 가족들이 빈소를 마련하고 나서야 나타난 회사관계자는 사과를 하기보다 “원하는게 뭐냐”고 말했다. 회사 고문이라는 사람은 사고로 회사가 제일 큰 피해를 입었다고 말해 유족이 분노하게 했다.

“진심 어린 사과 한 마디를 듣고 싶었는데, 우리를 돈을 요구하는 유족으로 만들었어요” 아들이 떠 난지 6개월 째, 엄마는 일을 쉬는 날이면 어김없이 아들이 있는 곳을 찾는다. 엄마는 아들의 물건 대부분을 정리했지만, 아들의 자전거는 여전히 현관문 앞에 세워뒀다. “퇴근해서 자전거를 보면 대환이가 집에 돌아와 있는 것 같아요” 엄마는 말했다.

공장지붕 연쇄 붕괴로 사람 죽어도 계속 작업

지자체·노동부·사업주 수수방관

노동자 ‘작업중지권’ 확보 절실

울산엔 지난 2월 9~11일 3년 만에 폭설이 내렸다. 11일 집계된 적설량은 16cm다. 2011년 21.1cm 이후 가장 많다. 이때 북구 모듈화산업단지에서만 6개 공장의 지붕이 무너졌다. 모듈화단지엔 현대차에 부품을 납품하는 하청업체가 모였다. 공장 지붕 붕괴로 모듈화단지에서만 2명이 죽고 4명이 다쳤다.

2월 10일 밤 9시 36분께 동진오토텍 공장 지붕이 무너졌고 밤 10시 18분엔 금영ETS가 무너졌다. 2시간 뒤 11일 새벽 12시 41분엔 세진글라스, 새벽 1시 7분엔 덕양산업도 지붕이 무너졌다. 11일 낮 12시 3분 센트럴 공장까지 포함하면 첫 붕괴 이후 14시간 동안 공장 다섯 곳의 지붕이 무너졌다. 12일 낮 12시 47분 여명공업사까지 합치면 모두 6곳이다.

연쇄 공장 지붕 붕괴는 대부분 첫 사고가 난 동진오토텍에서 반경 1km 안팎에 있다. 두 번째 금영ETS에서 인명사고가 난 뒤에도 인명사고는 계속 일어났다. 연쇄 붕괴에도 업체는 조업을 멈추지 않았다. 울산시 재난안전대책본부와 소방기관도 따로 안전초지를 내리지 않았다.

조강식 울산소방본부 구조구급팀장은 “소방서는 구조와 구급업무를 하고 사전 예방은 시 안전총괄과가 담당하는 것으로 안다”고 했다.

최정식 울산시 안전총괄과 복구지원사무관은 연쇄 사고가 발생하는 동안 인근 업체에 주의조치를 내렸느냐는 질문에 “시청은 사고 전 예방과 사고 발생시 절차에 따라 처리한다”며 “주의조치를 따로 하진 않는다”고 답했다. 최 사무관은 “기본적으로 폭설 대처는 자력 복구가 원칙”이라며 “자기 집 앞에서 일어나는 사고는 본인이 책임져야 하는 것처럼 알아서 해결해야 한다”고 말했다.

관계기관 중 어느 곳에서도 조업정지를 지시하거나 안전조치를 내리지 않았다. 그 결과 금영ETS에서 현장실습하던 고교생이 숨지고 13시간 뒤 센트럴 공장도 붕괴돼 또 인명 사고가 일어났다.

소방기관 관계자는 “소방업무를 지자체에 맡겨서 생기는 문제”라며 “구조와 구급 업무가 이원화돼, 이번 폭설처럼 다발 사고엔 선제 조치가 필요한데도 제때 이뤄지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아무리 위험해도 작업자가 작업을 중지할 권한이 없는 것도 문제다. 산업안전보건법 26조는 위급할 때 사업주에게 작업중지권을 명시했지만 유명무실하다.
덧붙이는 말

이상원 기자는 울산저널 기자입니다. 이 기사는 울산저널에도 게재됩니다. 참세상은 필자가 직접 쓴 글에 한해 동시게재를 허용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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