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학생과 부모는 학년 초 학교에 음악 실기 평가 등 청력을 사용해야 하는 경우 필답시험으로 대체해주기를 요청했었다. ‘학교생활기록 작성 및 관리지침’ 상에서는 가능한 일이었다. 하지만 실현되지 않았고 결과적으로 교사가 주도한 학생 간 폭력이 벌어지게 됐다.
교사의 잘못인가?
교사의 책임소재에 대해서는 의문의 여지가 없다. 교사는 교사로서도 인간으로서도 돌이킬 수 없는 잘못을 저질렀다. 하지만 드는 의문. 이 교사는 학생이 청각장애가 있다는 것을 알았을 텐데 왜 계속해서 리코더 연주 시험을 치게 한 것일까? 심지어 다음 시간까지 제대로 불지 않으면 학급 전체에 점수를 줄 수 없다는 극단적인 협박은 학생의 리코더연주가 이 반의 음악수업에서 굉장히 중요한 문제가 되었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왜?
수행평가가 뭐길래
수행평가란 영어로 performance assessment, 다른 말로는 ‘직접적 평가’로 표현되는데 실제로 학생이 수행한 산출물을 근거로 평가하는 방식 전체를 일컫는 말이다. 디자이너를 채용할 때 포트폴리오를 보는 것도 수행평가이고 면접평가나 실습평가 등이 대표적인 예라 할 수 있다. 초・중・고등학교에서는 1999년부터 도입되었는데 공교육정상화, 내신강화 등의 흐름과 맞물려 수행평가는 학생의 성적을 산출하는 것에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수행평가를 전면도입하게 된 이유는 수행평가가 문제를 푸는 능력을 측정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 학생의 능력을 측정할 방법이라는 이유에서였다. 다시 말해 ‘수학 80점’이라는 점수는 이 학생의 능력을 표현할 수 없지만, 포트폴리오나 영역별 면접평가는 실제로 학생이 어느 부분에 어떠한 성취를 이루었는지와 그 과제를 해결해가는 동안의 사고과정과 전략들을 볼 수 있다는 점이 수행평가의 최대 장점이다.
못 하는 게 어딨어, 무조건 해서 C라도 받아
하지만 한국 교육의 줄세우기식 평가는 수행평가를 왜곡시켰다. 현재 수행평가의 평가문항은 마치 해당 학기에서 학생이 성취해야 할 최저 마지노선처럼 여겨진다. 평가 방식 자체가 그렇다. 좀 ‘부족’해서 C를 받을 수는 있지만, 평가에 해당하는 내용을 전혀 하지 못하는 것은 허용되지 않는다. 모두 다 배워야 다음 학년으로 넘어갈 수 있다.
또, 수행평가 역시 등수를 낸다. 원래 취지대로라면 수행평가는 상대평가가 아니다. 수행평가의 결과들을 주욱 모으면 해당 학생이 언제 어떤 것들을 이루었는지 그 궤적을 볼 수 있을테지만 지금 학교의 수행평가는 그렇지 못하다. 어느 학교에는 40% 어떤 학교에는 50% 그 학교에서 정한대로 A, B, C 각자 점수화되어 중간 기말고사에 합산해 최종적으로 과목별 석차로 매겨진다. 전교등수를 내려면 전교의 모든 학생이 그 시험을 치러야 한다. 청각장애가 있는 학생이라고 리코더 연주 시험을 치르지 않고 필답고사를 치게 한다면 그 학생의 성적은 석차를 매길 수 없다. 석차를 매긴들, 다른 학생들이 받아들일 수 있을까.
학생의 성취와 아무 상관 없는 의미 없는 평가
그나마 학생이 특수학급에서 수업을 받는 과목이 있다면 다른 기준에서의 평가를 받을 수 있지만, 통합학급에서 수업 듣는 과목들은 별반 다르지 않다. 특수학급에 편성되지 않은 더 많은 학생은 또 어떤가. 언어치료를 받는 학생 A는 매해 국어과 모든 과목, 모든 영역 수행평가에서 C를 받는다. 심장수술 병력이 있는 학생 B는 체육과 영역 절반 이상에서 늘 C를 받는다. 초・중・고 12년 동안 점수가 똑같다. 이 성적은 도대체 학생의 무엇을 평가하고 무엇을 기록하고 있는가.
물론 학교가 평가를 위한 기관은 아니다. 하지만 현재 한국의 학교는 에너지 대부분을 평가에 쏟아붓고 있다. 그런데 그 평가가 이리도 의미 없는 것이다. 성적표를 모아본들 거기서 알 수 있는 정보는 아무것도 없다.
학교만이 아니다. 국가나 교육청은 더 심하다. 국가수준성취도평가나 지역교육감이 각 지역 학교 전체를 대상으로 벌이는 성취도평가를 살펴보면 장애학생의 경우 가능하다면 시험을 치르게 하되 최종 성적결과에서는 제외하도록 되어 있다. 수많은 반대에도 교육과정이 학생들에게 잘 맞는지, 교육정책이 효과적으로 작동하고 있는지를 판단하는 자료로서 시행한다는 일제고사들이 장애학생의 성취에 대해서는 ‘알 필요 없다’고 말하고 있다. 오히려 더 세밀하게 평가되고 더 풍부하게 이해돼야 함에도 보고조차 받지 않는다.
용인시의 한 초등학교 운동회에서 무릎 연골이 자라지 않아 키가 또래보다 작고 잘 뛰지 못하는 한 학생이 늘 달리기 꼴찌를 하는 것을 고민하다 다른 학생들이 결승점 앞에 기다리다 같이 손잡고 들어온 것이 화제가 된 적이 있다. 미담이라 박수만 칠 것이 아니라 매일 꼴찌만 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래서 아무 의미 없는 경주라면 그 종목을 바꾸거나 여러 개로 나누어야 하는 게 아닐까. 문제는 미담으로 절대 해결되지 않으니 말이다.
- 덧붙이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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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냥 기자는 뉴스민 기자입니다. 이 기사는 뉴스민에도 게재됩니다. 참세상은 필자가 직접 쓴 글에 한해 동시게재를 허용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