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 8.18합의가 자본과의 프레임에서 비정규 운동의 어려움과 한계를 그대로 반영한 결과라면 금속노조 정기대의원대회에서 8.18합의 폐기 과정은 불법파견에 대한 노조운동의 고민과 내부 갈등이 반영된 것이다. 하지만 ‘불법파견 정규직화’라는 투쟁목표는 불법파견을 인정한 법원판결과 정기대의원대회 합의안 폐기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선언적 의미’라는 현실적 한계를 갖는다. 자본과 금속노조, 노조운동진영의 대립에서 진작 밀려버린 결과다. 이런 결과는 현대차 사측은 한발 빠진 상태에서 8.18합의 당사자들 사이의 갈등이 주요 프레임으로 자리 잡음으로 확인된다.
이는 이경훈 현대차지부장의 8.18합의 관련 “나는 8·18합의가 기초가 돼야 한다는 생각에 변함이 없다. 나는 울산비정규직지회와 금속노조에 이미 분명하게 입장을 밝혔다. (신규채용규모를) 3천5백 명에서 4천 명까지 확대하자고 한 당사자가 이경훈인데, 이 합의를 번복하는 또 교섭을 진행하자는 것은 만천하에 웃기는 짓 아니겠습니까?”라는 말에서도 충분히 확인할 수 있다. 또, 합의 당사자인 현대차 비정규직 아산지회와 전주지회는 금속노조의 승인과 별개로 ‘조합원 총회 가결’이라는 내부 형식과 내용적 절차를 마침으로 현대차 자본은 빠진 채 ‘8.18 합의안’ 처리 문제는 오롯이 노조내부의 문제가 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금속노조 대의원대회의 규정력과 권위로 현대차지부와 아산, 전주지회를 설득할 수 있었을까. 내부문제가 아닌 현대차 사측과 ‘8.18합의’를 둘러싼 전선을 만들 역량과 계획이 울산지회와 금속노조에는 있었을까.
‘선언적 의미’마저 참을 수 없었던 금속 중앙집행위원회?
취재와 금속노조 회의 자료에 따르면, 정기대의원대회에서 8.18합의는 법원판결에도 불구하고 ‘합의 폐기’ 대 ‘합의 존중’의 프레임으로 논란이 된다. 또한 안건 성격과 관련한 논란이 일자 전규석 위원장은 수정동의안으로 이를 처리한다. 이를 두고 중앙집행위원회에서는 ‘충분한 설명과 (전규석 위원장의)의사진행의 문제’로 ‘합의 존중’의 입장이 제기된 것으로 보인다.
해프닝이었다고 하지만 듣기에 따라서 상당한 압력으로 들릴 수 있는 이경훈 현대차지부장의 ‘셀프징계 요구’는 정기대의원대회 결정을 중앙집행위원들이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보여주는 예다. ‘현대차지부와 현대차 비정규직 아산/전주지회는 규약을 위반했다’는 정기대의원대회 결정은 ‘지회별 판단으로 회사와 합의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 모든 합의를 지회규칙 위반으로 처리할 수 없다’는 관행의 문제로 이어졌다. 이는 의도나 진정성과 상관없이 중앙집행위원 다수의 공감을 얻은 것으로 보인다. 조성옥 금속노조 부위원장도 “금속노조 규약위반으로 징계하게 되면 모든 중앙집행위원이 다 징계 받아야 한다고 얘기됐다. 관행상의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고 밝힌 바 있다.
이런 분위기는 노조 안팎에서 ‘현대차지부장 대 금속노조 위원장’, ‘현대차지부장과 중앙집행위원회 대 금속노조 위원장’, ‘현대차지부 입장 동조 대 비동조 세력’ 등으로 갈등 프레임이 비춰진다. 중앙집행위원회는 ‘정기대의원대회 평가’ 논란 끝에 ‘8.18합의 존중과 사과’라는 대의원대회의 선언적 의미의 합의 폐기 결정마저 의심받는 평가안을 제출하고, 위원장 담화문 형태로 낸다. 물론 이 담화문은 사전에 현대차지부와 울산비정규직지회에 내용이 공유되었다. 하지만 담화문이 몰고 올 파장은 아무도 예측하지 못했던 듯하다.
보수언론과 사용자측은 금속노조의 교섭권을 흔드는 기제로 발 빠르게 대응한다. 신속하게 반응한 자본과 달리 금속노조 불법파견 투쟁은 ‘위원장 담화문’ 발표와 함께 깊은 수렁에 빠진다. ‘대대결정 사항 번복이다. 아니다.’는 내부 프레임에 갇힌 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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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대차 울산비정규직지회와 아산사내하청지회 일부, 활동가 등은 금속노조에서 46일간 농성을 했다. [출처: 참세상 자료사진] |
농성 후, 8.18합의 존중이냐? 폐기냐?
담화문이 발표된 후, 금속노조 위원장실 농성에 동조하는 세력과 아닌 세력으로 모든 문제는 빨려든다. 하지만 ‘대대 결정 사항 번복이다. 아니다’이든 ‘8.18합의 존중이냐, 폐기냐’이든 어느 쪽도 자본과의 프레임으로 불법파견 문제를 전환하지 못했다.
오히려 8.18합의와 위원장 담화문을 이끌었던 세력들은 금속노조 뒤에 숨었던 것으로 보인다. 금속노조가 곤란을 겪는 동안 8.18합의 당사자인 현대차 비정규직 아산과 전주지회, 현대차지부는 ‘합의 존중’을 호소하지 않았다. 또, ‘정기대의원대회 평가 안’을 이끈 중앙 집행위원들조차 회의장 밖으로 문제를 드러내지 않았다. 오직 금속노조 임원 명의의 ‘대대결정 번복 아니다’는 옹색한 답변만 했을 뿐.
잇따른 ‘현대차 불법파견’ 법원판결에도 불구하고 민주노조운동 진영은 불법파견을 사회적 의제로 새롭게 부각시키거나 비정규노동자 투쟁으로 확산시키지 못한다. 결과적으로 8.18합의를 둘러싼 논쟁은 불법파견 문제를 현대차 사업장 내, 금속노조 조직 내부 문제로 치환시켰다.
이렇게 되기까지는 자본주의 내에서 노동조합운동의 한계이듯, 노,사합의로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사업장내 관행에서 비롯된 점도 있다. 산별노조지만 거대 기업지부의 교섭구조에 이끌려가는 금속노조의 현실문제이기도 하다. 또 각자의 생각과 처지만큼 문제를 회피한 각 단위의 책임도 있다. 금속노조는 ‘3자 합의 없는 교섭 불참’이라는 조직 내 정치적 입장만 냈을 뿐 불법파견에 대한 15만 금속노조에 걸맞은 사회적, 산업적 문제의식조차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8.18합의에 앞서 비정규직 3지회가 ‘각 지회별 판단을 존중’이라는 각자의 길을 선택한 것은 ‘공동교섭과 공동투쟁’이라는 과정이 문제가 아니라 사실상 연대투쟁 포기였다. 노동자들의 불법파견 투쟁은 그렇게 사업장내 합의로 수렴된 것이다. 이런 8.18 합의 이후, 법원 판결로 불법파견 투쟁은 기사회생했고 ‘합의안 폐기’ 결정과 이를 둘러싼 논란을 다시 일으켰다. 이런 점에서 울산지회가 교섭에 불참키로 한 것이나, 8.18합의 당일 ‘울산지회를 적용하지 않는다는 문구를 넣기로 하고’ 농성을 해제한 것으로 ‘비겁한 원칙주의자’라는 비판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는 없다.
3월 3일 임시대의원대회는 유회되었다. 그것도 문제가 된 ‘정기대의원대회 평가 안’을 다루는 과정에서 성원부족으로. 누구에겐 유감일수도 있고 누구에겐 아무 상관없는 일일 수도 있다. 하지만 불법파견을 둘러싼 7개월여의 논란은 ‘노동조합이 만들어내는 의제’가 확산되기보다는 축소되고 내부 문제로 귀결되는 과정을 보였다. 새로운 투쟁에 나서자는 ‘상징적 선언’마저 합의하기 힘들 정도로 뿌리 깊은 갈등과 불신을 드러냈다. 자본과의 프레임보다는 사업장 내부 또는 노동운동진영 내부의 갈등과 불신 문제만 두드러지고 남았다. 금속노조와 민주노조운동진영, 현대차지부와 비정규직지회 모두의 문제다. 현실 운동에서 서로를 어떻게 설득할 것인지. 서로를 향한 불신과 독설을 거두고 함께 노동대 자본으로 맞설 것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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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월 3일 금속노조 임시대대는 문제가 된 ‘정기대의원대회 평가 안’을 다루는 과정에서 성원부족으로 유회됐다. [출처: 금속노동자] |
- 덧붙이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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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은 기자는 미디어충청 기자입니다. 이 기사는 미디어충청에도 게재됩니다. 참세상은 필자가 직접 쓴 글에 한해 동시게재를 허용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