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명제를 반대한다. 이 기사는 논쟁중
인터넷실명제 반대 공동대책위원회

실명제를 반대한다.

 

공직선거법 제82조6에 의하면, 선거시기에 실명확인 시스템을 갖추지 않은 인터넷 언론사에는 1천만원 이하의 과태료가 부과됩니다. 그러나 선거시기 인터넷 실명제는 국가가 인터넷 언론과 국민에게 강요하는 검열이자, 익명성에 바탕한 표현의 자유와 여론 형성의 권리를 침해합니다. 정보인권 단체로서 진보넷은 선거시기에도 네티즌이 자유롭게 의견개진을 할 수 있도록, 실명제를 거부한 인터넷언론의 기사들을 미러링하고 그에 대한 덧글란을 선거기간 동안 운영합니다. 실명제 반대 행동 참여하기실명제 반대 행동 참여하기

이 게시판을 통해 전북 참소리, 미디어충청, 민중언론 참세상, 울산노동뉴스의 기사와 관련된 토론을 직접 하실 수 있습니다.

 

[인권오름] [인권단어장] 사회권

A: 밥 먹었니?
B: 응. 대충
A: 왜 대충 먹어? 잘 먹어야지.
B: 요즘 세상에 잘 먹기가 쉽니? 사 먹어도 해 먹어도 잘 먹기가 얼마나 힘든데.
A: 하긴 숱한 끼니를 때우고 살지만, 시간‧돈‧같이 먹는 사람, 하나하나 따져보면 잘 먹었다고 할 때가 찾기 힘드네.
B: 허접하게 먹더라도 안전한 음식이라도 먹었으면 좋겠는데, 불안 중에 식품에 대한 불안은 얼마나 큰데. ‘모르고 먹어야지, 알고선 못 먹는다’는 말 좀 그만 들었으면 좋겠어.

A: 밥 한 끼에 온갖 시름이 담겨있구나.
B: 내 밥만이 아니라 밥 때문에 기운 빠질 때가 많아. 먼지 풀풀 날리는 거리에서 급식 받는 노인들을 볼 때 울컥해. 보편적인 학교급식을 둘러싸고 야박한 소리 오갈 때, 계단참이나 심지어 화장실에서 끼니를 때워야 한다는 노동자 기사를 볼 때, 식사시간도 없이 일한다며 쫓기는 친구들을 볼 때…….

A: 밥보다 시름을 더 자주 먹는 것 같다. 이런 문제와 관련된 인권은 없는 거야?
B: 왜 없어? 사회권이란 버젓한 인권이 있지.
A: 사회권? 그거 마이크 잡은 사람이 자기한테 집중하라고 소리 지를 때 하는 소리 아냐? 사회자를 존중해서 주목해 달라고.

결연한 사람들의 권리

B: 후후. 그런 것 아냐. “모든 사람은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사회 보장을 받을 권리가 있다” 이런 말은 들어봤지? 세계인권선언 제22조에 나오는 말이야.
A: 사회보장‧사회복지, 그거야 흔한 말이지. 근데 사회권은 뭐 별다른 거야?

B: ‘사회의 구성원으로서’란 말에 주목해 봐. 사회권은 ‘사회적 권리’ 또는 ‘경제적‧사회적 권리’의 줄임말이야. 여기서 ‘사회적’이란 말의 어원을 따져보면 ‘결연했다’는 뜻이래.
A: 결연? 인연을 맺었다?

B: 그래. 사회권을 풀이하면, 사회 속에서 결연한 모든 사람은 그 사회공동체의 이익을 공유할 수 있다는 뜻이야.
A: 그럼, 누구도 제외되거나 배제돼선 안 된다는 말이네.
B: 그렇지. ‘무엇’을 누리느냐의 문제만 중요한 게 아니라 ‘누구’와 누리느냐가 중요해. 어떤 밥을 먹을 것이냐 만이 아니라 누구랑 ‘어떻게’ 먹느냐가 중요한 것처럼 말이야.

A: 무엇을 누구랑 어떻게? 이 셋을 다 고려하는 게 사회권이란 말이구나.
B: 이를테면, 콩 한쪽을 나눠먹어도 누구나 같이 밥상에 앉아 같이 먹을 자격이 있다는 것, 그건 시혜가 아니라 누구나의 권리라는 거야.
A: 그런 권리라면 그냥 앉아서 누가 떠먹여주는 것을 받아먹는 게 아니라 적극적으로 밥상의 참여자가 되는 거잖아. 그럼 사회권은 밥에 대한 권리만이 아니라 밥상에서 목소리를 낼 권리라고도 할 수 있겠네.
B: 그렇지. 그러니까 사회권은 물질적 분배만이 아니라 누구를 구성원으로 대접하고 어떻게 밥을 지을 지를 결정하는 정치적 권리와 떼놓을 수 없어.

제공한다고 사회권인 건 아니다

A: 권리라면 당당하고 떳떳해야 하는 거 아냐?
B: 맞아. 권리란 그 상대방에게 존중할 의무가 발생하는 정당한 요구야. 우리에게 사회권이 있다는 건 국가가 그 권리를 존중하려는 조치를 취할 의무가 있다는 거야.

A: 하지만 번듯한 사회보장제도는 안정된 직장을 가진 사람들이나 누리는 거지. 실직자나 가난한 사람들은 별도의 프로그램으로 다루잖아. 난, 솔직히 복지라는 이름 붙은 게 권리로 안 다가올 때가 더 많던데.
B: 재화나 서비스를 제공해준다고 해서 모두 사회권인 건 아니지.

A: 나, 어렸을 때 생활보호대상자였는데. 매달 동사무소에서 밀가루 한 포대를 받았어. 매일 수제비만 끓여먹었지. 수제비에도 질렸지만, 그걸 받을 때마다 창피했어. 그래도 받아야만 했으니까. 뭔가 눈총 받는 느낌이었는데 그렇게 받는 게 권리일 수 있을까?
B: 우리 사회의 복지도 많이 달라지고 좋아졌다는 데 네가 말한 눈총 받는 느낌은 여전한 것 같아. 며칠 전 슈퍼에 갔더니 아저씨들이 이런 얘기를 하고 있더라. 장애인 차량 혜택이 문제라고 말이야. 장애인들이 어려우니 도와주기는 해야 하지만 자기들 같은 영세자영업자한테도 해줘야 되는 거 아니냐고. 자기들은 세금만 내고 억울하다고 하더라.

A: 나도 비슷한 말 들었어. 의료보호제도 이용하는 사람 중에 가난한 환자가 아니라 꾀병이 많다고, 거의 공짜라고 뻔질나게 병원을 드나들어서 문제라는 얘기도 하던데. 자기들처럼 꼬박꼬박 건강보험료 내는 사람들만 손해라고.
B: 다들 살기 어려운데 누구만 특별대우 받는다는 눈총, 경제도 어려운데 저 사람들은 과분한 혜택을 받고 있다는 비난 같은 거 진짜 많아.
A: 무시하고 낙인찍는 거 그런 것 없이 나누면 안 되는 걸까? 네 말대로 재화나 서비스가 제공된다고 해서 다는 아닌 것 같아.

B: 사회권의 짝퉁은 많아. 가난한 사람들을 방치하면 사회불안 요소가 된다고 최소의 복지를 관리와 감시통제의 수단으로 삼는 것, 또는 경제발전을 위한 투자라는 식으로 수단시하는 것 등 말야. 사람의 삶이 목적이어야 하는데 말이야.
A: 기브앤드테이크(give and take)라고 기여한 만큼, 노력한 만큼, 낸 만큼 가져가라는 것도 그렇지 않나? 일을 가질 수 없어서 힘들고 그래서 소위 기여를 할 수 없는 건데, 기여 안했으니 자격 없다는 말은 들을 때마다 억울해.
B: 흔히 각 사람이 기여한대로 배분하고 나서 부족하거나 배제된 사람에게 재분배해준다, 이런 식으로 생각하는데 사회권은 그런 대가와 보상이 아니라, 모든 사람의 존재 그 자체를 존중하는 거야. 인간의 동등한 가치를 존중하기 때문에 그걸 경제사회적 분배와 재분배로 표현하는 거야. 그 존재 자체가 소중하기에, 사람이란 존재가 사람답게 살아갈 수 있도록 제도적으로 보장해야 한다는 게 사회권이야.

A: 내가 찜찜해하던 성격의 시혜나 혜택과는 구분이 되는 것 같다. 내가 이 사회의 일원이란 이유만으로 자격이 있다는 거잖아.
B: 그래. 사회권은 모든 사람이 동료로 사회생활에 참여할 수 있도록 사회적 배치를 바꾸는 거야. 분배 구조를 바로잡고 무시나 경멸 같은 몰인정을 존중으로 바꾸는 것, 둘 다를 말하는 거야.
A: 어디선가 ‘사회적 시민권’이란 말을 들어본 것 같아. 네 말대로 하면,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누구나 갖는 공통된 지위란 뜻이구나.

사회적 보호의 최저선

A: 근데, 아무리 공통된 지위에서 권리로 보장받는 것이라 하더라도, 내가 받았던 밀가루 한 포대처럼 수준이 형편없으면 좀 그렇지 않나? 나, 그때 학교에 도시락을 싸갈 수 없었거든. 집에서 수제비를 끓여먹을 순 있지만, 그걸 도시락으로 싸갈 수는 없었으니까.
B: 사회권에는 ‘사회적 보호의 최저선’이란 게 있어.
A: 최저선? 그거 인터넷에서 본 씁쓸한 농담 같은 데. 임금 중에 젤 초라한 임금은 최저임금이란 말처럼.
B: ‘최저’를 고만큼만 줘도 되는 것으로 생각하는 것과 최소한 이것만은 마지노선으로 지켜야 한다는 것은 달라. 당장의 긴급한 손길이 필요한 사람들에 대한 사회보장과 적절한 생활수준에 대한 권리를 합한 게 ‘사회적 보호의 최저선’의 개념이야. 우린 단지 목숨을 연명하는 게 아니라 존엄성을 갖춘 생존을 추구하는 거잖아.

A: 하지만 ‘적절한 생활수준’을 무슨 무슨 선진국 수준으로 소비를 끌어올리는 그런 거로 생각하면 답이 없을 것 같은데. 그렇게 하려면 지구가 수십 개라도 모자랄 거야.
B: 맞아. ‘적절한’을 양의 문제로 생각하면 안 될 것 같아. 무엇보다도 모든 구성원을 우리 사회 안에 자리를 가진 존재로 대접하려는 게 중요한 것 같아.

A: 예를 들자면?
B: 가령 사회권 중에서 노동권을 생각해보자구.
A: 노동권이면 일단 수입을 가질 수 있는 일을 할 수 있고 제대로 된 임금을 받는 거 아냐?
B: 그렇지. 근데 너부터 임금노동만 일로 생각하고 있잖아. 가사 노동이나 돌봄 노동 같은 노동을 돈을 받는 소위 ‘생산적’ 노동과 구분하는 원리부터 문제 삼을 수 있어. 그런 식으로 접근하면, ‘적절한’ 생활수준에 대한 권리는 임금 노동을 하는 사람들의 것이 일차적이고 그 나머지에 대해선 별도의 혜택의 문제가 돼버리잖아. 이런 것부터 다시 생각하는 게 사회권에서 말하는 ‘적절한’이 아닐까?

A: 맞아. 그러네. 그리고 노동에 대한 대가를 제대로 받는 것도 중요하지만, 노동자를 인력이 아니라 인간으로, 노동관계를 다른 물건처럼 사고파는 문제가 아니라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로 보는 것도 중요한 것 같아.
B: 사회적 불평등을 만들어내는 뿌리는 그대로 놔둔 채, 표면적으로 제공하는 재화와 서비스만 늘린다고 ‘적절’한 사회권 보장이 되는 건 아니야. ‘최저선’을 양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사회 근본 틀의 문제로도 봐야할 것 같아.

사회권 침해를 인권 문제로

A: 근데 내 주변에 보면, 나처럼 사회권이란 말조차 모르는 사람이 태반이야. 이런 상황에서 사회권의 침해를 인권침해 혹은 인권문제로 받아들일 수 있을까?
B: 사회권이 억울한 것 중의 하나가 사람들이 인권문제로 잘 여기지 않는다는 거지.
A: 그저 경제 사정이 나빠서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가난은 사회현상이 아니라 원래 있는 자연현상 같은 거다, 뭐 이런 체념과 수용, 묵인이 많은 것 같아.

B: 그보다 더 나쁜 건, 개인적 결함과 무능력으로 몰아 비난하는 거야. ‘그러게, 좀 더 노력하지 그랬어’란 말이 그렇지.
A: 나도 내가 노력이 부족해서 그랬다고, 좀 더 열심히 살지 못해서 그렇다고 나를 늘 채근하는데.
B: 자기 성찰과 자기 학대는 다른 것 같아. 그런데 생활이 어려울수록 우린 비난의 화살을 자기에게 쏘거나 나보다 불우한 사람들에게 쏘는 것 같아.

A: 나는 사회권이란 말을 듣기 전에는 개인적이고 직접적인 가해만 인권침해로 생각했어. 또 국가권력이 폭력적으로 행하는 일만 인권침해라고 생각했어. 그런데 가만 보니 손 놓고 방임하는 것, 경제사회적 강자에게 유리하게 시스템을 만들고 운영하는 게 근본적 인권침해 같아.
B: 사회권의 침해는 문제를 회피하고 부인하고 방임하는 시스템에서 발생하는 게 맞아. 우린 그 시스템 속에서 시스템의 작동을 돕고 있다고도 할 수 있어.

A: 사회권을 침해받으면서 내가 그 작동을 돕는다? 참 무섭다.
B: 나도 그래. 내가 누리는 소비의 몫을 늘리려는 데만 몰두하며 사는 게 싫으면서도 무력하고. 삶의 조건을 어떻게 바꿔나갈 수 있을까?
A: 네가 나에게 사회권이란 말을 알려줬잖아. 우린 당장 유토피아를 열려는 게 아니라 새로운 말을 하고 새로운 말에 맞춰 생각을 바꾸면서 변화를 만들 수 있을 거야. 그게 모든 인권이 걸어온 길이잖아. 노동, 교육, 건강, 주거 등을 다 내 돈 주고 내가 해결해야 한다는 생각에서 벗어나서 같이 차리고 같이 먹는 밥상처럼 생각해야겠어.
B: 사회권을 권리의 문제로 인식하고, 사회권 침해를 인권에 대한 구조적 침해로 생각하는 것부터 시작하자는 말이구나. 문제를 받아들였으니 풀려고 애써야겠네.


덧붙이는 말

류은숙 님은 인권연구소 '창' 연구활동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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